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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천군: 역사

배천군: 역사

본래 고구려의 도랍현(刀臘縣)이 있었으며, 별칭은 치악성(雉嶽城)이었다. 신라가 차지하고 경덕왕 때 구택현(雊澤縣)으로 개칭하여 해고군(海皐郡, 나중의 연안군)의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 초에 배주(白州)로 고치고 평주(平州, 나중의 평산군)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이후 개흥부(開興府), 충익현(忠翊縣), 복흥군(復興郡)을 거쳐 공민왕 18년(1369)에 다시 배주(白州)로 고쳤다.
례성강 남쪽 하구 배천군 일대에는 례성항(禮成港)이 존재하였는데, 고려에서 중국의 송나라와 교섭할 때 이곳에서 모든 배를 띄워 예절 있게 맞아들이고 다시 바래다 주었던 강이라 례성(禮成)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고려 시대 송나라 상인들의 왕래가 많았을 때의 사실을 노래한 례성강곡(禮成江曲)이라든가 례성강가에 와서 살던 중국 창녀들을 소재로 한 들놀이 '당녀소매무(唐女小梅舞)등의 지역 민중예술이 전해진다.
조선 왕조에 들어 태종 13년(1413)에 배천군(白川郡)으로 개칭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서쪽으로 이웃한 연안군과 합쳐져 연백군에 속했다. 일제 강점기에 배천온천이 개발되어 경성(서울)에 가까운 온천의 하나로서 번성하였다. 해방 이후 38선이 지났으나 한국 전쟁으로 북한 당국이 전역을 장악하였다. 1952년 연백군이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분리되었다.

고구려 - 도랍현이 놓여졌다.
신라 - 구택으로 불리며 해고현에 속했다.
고려 - 충익현, 부흥군, 백주(배주)로 불렸다.
1413년 - 배천군이 놓여져 경기도로부터 황해도로 관할이 옮겨졌다.
1526년 - 배천현이 되었다.
1535년 - 군으로 복귀하였다.
1895년 - 해주부 배천군에 속하였다.
1914년 - 배천군과 연안군이 합병해 연백군이 되었다(1읍 19면).
1952년 12월 - 연백군이 분할되어 배천군으로서 편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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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lle: Text: Wikipedia – „배천군“, Autorinnen und Autoren (Versionsgeschichte), CC BY-SA 4.0 · Foto: Open Street Map Distributors, CC BY-SA 2.5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