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matgeschichte · Andong-si ·

안동시: 역사

안동시: 역사

선사시대에 사람이 살던 흔적이 여럿 발견되고 있으며 임동면 수곡리에는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가 있다.
견훤과 왕건의 싸움인 고창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고려 시대에 이미 안동은 길주목, 복주목, 안동부 등으로 승격되어 경상도의 중요 도시로 성장하였으며 이와 같은 중요성은 조선 시대에까지 이어져 안동대도호부가 되어 그 후 1895년 지방행정제도 개편 때까지 계속 지위를 유지하였다. 당시의 안동대도호부는 현재의 안동시뿐만 아니라 예천군과 봉화군의 일부까지도 관할하였으며 인구나 시가지 규모가 경주부에 이은 경상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또한 경상도 동북부 지역의 계수관(界首官)으로서 지역의 행정, 군사, 교육 중심지이기도 했다.

퇴계 이황과 서애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유교와 봉정사로 대표되는 불교, 하회마을과 하회별신굿탈놀이·차전놀이·성주풀이 등으로 대표되는 민속이 어우러진 문화 기풍을 보여주며 조선 시대에는 남인 계열의 한 기둥으로 자리잡았다.
조선 시대에 안동에서 배출한 인물이 가장 많았으며 이천, 이현보, 이황, 류성룡, 김성일 같은 문인·학자로부터 현대에는 이상룡·이육사 같은 독립운동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인물이 다수 출현하였다.

그러나 개항 이후 경부선이 안동에서 멀리 떨어진 김천과 대구에 부설되고 철도에서 소외되어 조선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오래된 도시들이 쇠퇴하는 가운데 안동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되었다. 지역 중심지로서의 역할은 수행했을 지언정 도시의 절대 규모는 급성장하는 타 도시들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안동의 인구는 경상북도 내에서조차 대구, 포항, 김천, 경주에 이어 다섯 번째에 불과하였으며 시로 승격된 것도 1963년으로 경상북도에서 다섯 번째였다.
시로 승격된 이후에도 발전은 크게 정체하여 대도시와의 격차가 점점 심해졌으며 1976년 안동댐 건설로 그 정점에 달했다. 시와 군을 합하여 24만에 달했던 인구는 급속도로 감소했으며 2009년에는 16만명 대로 감소하였다. 그러나 2008년 경상북도청 이전이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후보지로 결정되고 교통이 점차 편리해지며 각종 산업단지 유치를 이끌어냄에 따라 30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증가세로 잠시 돌아섰지만 이후 계속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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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lle: Text: Wikipedia – „안동시“, Autorinnen und Autoren (Versionsgeschichte), CC BY-SA 4.0 · Foto: Robert at w:Picasa, CC BY 3.0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