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시: 역사
이 지역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이다. 송학면 포전리 점말동굴과 도화리 고인돌, 봉양읍 학산리 고인돌, 청풍면 황석리 고인돌 등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이 뒷받침된다. 특히 송학면 포전리 점말동굴은 남한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석기 유적으로 큰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본래 백제의 나토군(奈吐郡) 또는 대제(大提)였다.
신라가 차지하고 경덕왕 대에 나제군(奈隄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제주(堤州)로 개칭하고 원주의 속현으로 삼았다.
1106년 감무(監務)를 두었다.
1460년 제천현(堤川縣)을 설치하고 현감(縣監)을 두었다. 이웃한 청풍 지역은 청풍군(淸風郡)이 되었다.
1660년 청풍군이 청풍도호부(淸風都護府)로 승격되었다. (현종비 명성왕후 김씨의 관향)
1895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 제천현이 제천군(堤川郡)으로 승격되고, 청풍도호부가 청풍군으로 환원되어, 충주부 제천군, 청풍군이 되었다.
1896년 8월 4일 충청북도 제천군, 청풍군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4월 1일 청풍군이 제천군에 편입되었다.
1940년 11월 1일 제천면을 제천읍으로 승격하였다. (1읍 8면)
1980년 4월 1일 제천군 제천읍이 제천시로 승격되고, 제천군이 제원군(堤原郡)으로 개칭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제원군 금성면 명지리, 강제리, 산곡리와 봉양면 천남리, 왕암리, 신리가 제천시에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 단양군 어상천면 자작리가 제천시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 제원군 금성면 대랑리를 제천시로 편입하였으며, 중원군 산척면 원월리를 제원군 백운면으로 편입하였다.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을 제천군으로 명칭을 환원하였다.
1995년 1월 1일 제천시 일원과 제천군 일원을 관할로 도농복합형태의 제천시가 설치되었다. 봉양면이 봉양읍으로 승격되었다. (1읍 7면 13동)
1998년 9월 25일 제천시 일부 동이 통폐합되었다. (1읍 7면 9동)
2003년 7월 7일 제천시 일부 동이 신설 혹은 통폐합되었다. (1읍 7면 9동)
2011년 1월 1일 제천시 일부 동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1읍 7면 9동)
2017년 1월 1일 제천시 일부 동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1읍 7면 9동)
제천의병(堤川義兵) : 제천을 비롯한 사군지역(제천, 청풍, 단양, 영춘)에 지리적, 학문적, 혈연적 연고의 기반을 둔 한말 의병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시기에 따라 그 외연 (外延)이 때로는 영남, 강원, 경기지역, 나아가서는 서북과 해외에까지 확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항상 그 근거지는 제천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호좌의진(湖左義陳)과 이강년(李康秊)에 관한 핵심적 자료를 남겨둔 박정수(朴貞洙)도 제천은 의병의 처음이요, 마지막인 고장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장병이 제일 많았다'고 단언한 것이다.
또한 한말의 제천의병은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서 유중교(柳重敎)와 유인석(柳麟錫)이 거주하며 제자를 양성한 제천의 장담(長潭)(제천시 봉양읍 공전리)마을이 의병봉기의 터전이 되었으며, 지평의병이 패하고 영월로 후퇴하자 유인석이 요동(遼東)행을 포기하고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의진을 수습하고 의병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이곳 제천이다.
이에 제천시에서는 우리 삶의 터전인 제천지역의 숭고한 의병정신을 계승하고 한말 및 일제강점기에 치열하게 전개된 항일투쟁 관련자료를 한 자리에 모아, 이 지역의 후손들이 이러한 지역적 전통을 이어받아 진정으로 의(義)로운 지역문화와 전통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제천의병전시관, 숭의사, 의병기념탑, 자양영당, 성재.의암 선생 거택'등을 1995년 제천의병 창의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건립하여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