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산군: 역사
본래 고구려의 십곡성(十谷城) 또는 덕돈홀(德頓忽)이 있었는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진서(鎭瑞)로 고쳤다. 고려 초에 곡주(谷州)로 개칭하고 방어사를 두었다. 조선이 건립된 후 1393년(태조 2년)에 신덕왕후 강씨의 고향이라 하여 곡산(谷山)이라 개칭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곡산군의 토성(土姓)으로 우(禹)·노(盧)·강(康)·한(韓)·용(龍)·연(延) 6성이 기록되어 있다. 1895년에 행정구역을 군으로 일원화하며 곡산군이 되었으며, 별칭은 덕둔홀, 고곡, 진서, 상산 등이다.
주변의 수안군과 함께 일찍이 천도교가 전파된 지역으로, 천도교 곡산교구는 1914년 대교구제가 실시되면서 수안교구·신계교구와 함께 서흥대교구에 편제되었다. 곡산군의 만세운동은 천도교 계통으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방전의 곡산군은 12개 면과 69개 리로 구성됐다. 1952년 12월에 곡산면, 청계면, 운중면, 도화면과 서촌면의 3개 리, 동촌면의 2개리, 신계군의 촌면을 합병해 곡산군(곡산읍, 17개 리)을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