녕변군: 역사
고대에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영역이었고 고려시대에는 연주(연산부)·무주로 불렸다. 1012년에는 고려의 강감찬이 거란과 싸웠고, 1216년에는 김취려가 금나라군과 싸웠다.
조선시대에는 연산도호부·무산현이 설치되었고 1428년에 양자를 아울러 녕변대도호부가 놓여졌다. 1428년(세종 10년) 조선 세종의 명으로 부사(府使)와 판관(判官)을 두고, 병마도절제사로 하여금 부사를 겸임하게 하였다. 이후 한동안 평안도병마절도사가 녕변대도호부사직을 겸직하였다. 이듬해 3월 26일에는 조선 세종의 명으로 서반 토관직(土官職)을 설치하여 변민(邊民)을 이주시키고, 큰 진(鎭)을 설치하였다. 1624년에는 이괄의 난의 무대가 되었다.
1895년, 부군제(23부제)에 의해 평양부 녕변군으로 개편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에 13도제가 시행되면서 평안북도에 속했고, 1897년에 평안북도의 관찰사영(도청)이 정주에서 녕변으로 이전하였다. 1921년에 신의주로 이전될 때까지, 녕변은 평안북도의 도청 소재지였다.
1952년 12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 재편에 의해 구장군·향산군이 분할되었다. 1980년대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핵관련 시설의 건설이 시작되면서 북핵 문제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지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