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군 (함경북도): 역사
고구려, 발해를 거쳐 여진족의 거주지였고 고려·조선과의 사이에 쟁탈이 전개되어 15세기 전반에 조선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조선 세종 때 육진 중 하나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고려 시대 : 공주(孔州)라고 불렸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광주(匡州)라고도 하였다. 윤관이 여진족을 쫓아내고 공험진내방어소(公險鎭內防禦所)를 설치했었다.
1398년 : 1398년(태조 7년)에 옛터에 돌로 성을 쌓고 경원부를 설치하였다. 정도전이 왕업이 시작된 조선 건국의 성지라 하여 '경원'이라 하고 부로 승격한 것이다. 또 경성부 이북을 분할하여 여기에 소속시켰다.
태종 대: 태종 9년(1408년)에 치소를 소다로(蘇多老)의 옛 영으로 옮겼다가 이듬해 여진의 침략을 받고 백성을 경성군으로 옮기고 땅을 비웠다. 태종 17년(1414년)에 경성의 두룡이현(豆龍耳峴) 이북 땅을 분할하여 다시 부가참(富家站)에 읍을 설치하고 경원도호부로 삼았는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옛적 부거회수역(富居懷綏驛)이 있던 곳이다.
1428년 : 세종이 다시 치소를 횟가(會叱家) 지역으로 옮기고 남쪽 백성들을 이주시켜 개척했다.
1895년 : 경성부 경원군이 되었다(23부제).
1896년 : 함경북도 경원군이 되었다.
1947년 11월 : 유덕면을 경흥군으로 이관하였다.
1952년 12월 : 아산면을 경흥군으로 이관하고, 온성군 훈융면을 편입해 재편성하였다. (1읍 21리)
1958년 6월 : 종성군에서 옛 용계면 지역을 편입하였다.
1977년 9월 : 경원군을 새별군으로 개칭하였다. 새별은 일제 강점기에 김일성이 고장 주민들에게 '새별'처럼 조국 광복의 서광을 비쳐주었다고 하여 붙여졌다.
1986년 12월 : 안농리(安農里, 해방 당시 경원군 안농면 금희동과 신개동)가 류다섬리로 개칭되었다.
2005년 3월 : 새별군의 이름이 경원군으로 환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