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matgeschichte · Mungyeong-si ·

문경시: 역사

문경의 여러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한국의 다른 지역과 같이 문경에서도 일찍부터 소국(小國)이 형성되었는데, 특히 진한의 근기국(勤耆國)이 이곳에 비정되고 있다. 근기국의 이후 행방은 알 수 없으나 156년(아달라왕 3) 신라에 의해 계립령로(鷄立嶺路)가 개통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내물왕대 이후 신라가 비약적으로 팽창하면서 이 지역도 신라의 영역에 들어가 관문현(冠文縣, 또는 高思曷伊城, 冠縣: 지금의 문경읍), 가해현(加害縣, 현 가은읍), 호측현(虎側縣 또는 拜山城: 현 호계면) 등이 설치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시 이들은 각기 관산현(冠山縣)·가선현(嘉善縣)·호계현(虎溪縣) 등으로 개명되어 고령군(古寧郡, 현 함창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이 때 산양면 일대는 가유현(嘉猷縣)으로 예천군에 속해 있었다.
후삼국의 쟁패기에는 이 곳 가은현 출신 견훤이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세우자 이 지역은 견훤의 세력권에 들어갔으나, 뒤이은 후고구려의 남하로 인해 양대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927년(태조 10) 왕건이 친히 근암성(近巖城)을 함락시켰는데, 이 때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의 성주(城主) 흥달(興達)이 귀부해오자 크게 우대하였다. 이를 계기로 후백제에서 파견되어 온 관리들이 고려에 항복하고 말았다.
이후 고려에서 관산현은 문희군(聞喜郡)으로, 가선현은 가은현(加恩縣)으로 개명되었고, 1018년(현종 9) 둘 다 상주(尙州)의 속현이 되었다. 문희군은 이후 고려 시대 중에 문경군(聞慶郡)으로 개명되었고, 산양현에는 감무가 설치되었다가 1180년(명종 10) 폐지되었다. 1390년(공양왕 2) 문경군에 감무가 설치되면서 가은현을 속현으로 삼았다.

1413년(태종 13) 문경현에 현감이 설치되면서 상주 소속의 호계현이 내속하게 되었고, 8도 체제가 정비되면서 신구(新舊) 경상도관찰사의 교대 장소인 교구정(交龜亭)이 이 곳에 설치되기도 하였다. 당시 문경현의 토지는 척박했으며, 풍속은 검솔(儉率)했다고 하며, 호구수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161호 2,564인이었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양으로 통하는 새재(鳥嶺)로 인해 적의 주력이 이 곳으로 진격해 왔는데, 이 때 이 곳의 관병(官兵)은 대구(大丘)를 방어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문경현감 신길원(申吉元)은 수십 명의 관병을 이끌고 현청을 수비하다가 패배해 적의 포로가 되었으나, 끝까지 항거하다가 순국하였다.
임진왜란 뒤에 새재가 국방상 요새가 됨으로 인해 이곳이 계속 중시되어서, 1708년(숙종 34) 조령산성(鳥嶺山城)이 축조되었고, 1752년(영조 28)에 독진(獨鎭)이 설치되어 현감이 수성장(守城將)을 겸하다가 다음 해에 별장(別將)을 두었다.
1871년(고종 8) 이필제(李弼濟)·정기현(鄭岐鉉) 등의 지도하에 민중항거가 일어나 지방관과 향리의 불법을 규탄했고, 1877년에는 역모사건이 일어났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시 다른 군현과는 달리 군이 되지 못했으나, 다음 해에 13도제가 실시되자 군으로 독립하였다.
1906년 동로면(東魯面)과 화장면(化莊面)을 예천군에 할양했고, 1914년 군면통폐합에 따라 산양면과 영순면(永順面)의 일부가 상주군에 편입되었다. 한편 1907년 이래 이 곳 유지들에 의해 신식학교가 설립되어 인재양성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일진회에 의해 만들어진 도천학교(道川學校)가 민폐를 많이 끼치자, 의병들이 이를 소각하기도 하였다. 또 항일의병투쟁도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팔도의병총대장 이인영(李麟榮) 및 의병대장 이강년(李康年) 등은 이 곳 출신이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4월 13∼15일산북면 주민들이 갈평(葛平)장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1914년 4월 1일 용궁군(龍宮郡) 서면(西面)을 편입하였다.
11면 : 문경면, 마성면, 가은면, 농암면, 호계면, 산양면, 영순면, 산북면, 동로면, 신북면, 호서남면
1934년 4월 1일 신북면(身北面)을 문경면에 합면하였다. (10면)
1949년 문경군의 군청 소재지가 문경면 하리에서 호서남면의 점촌리로 이전해 오자 이 지역의 발전은 급속화 되었고 그 결과 1956년 호서남면(戶西南面)이 점촌읍으로 개칭, 승격한 이래 관할 행정구역의 개편이 있었고, 1973년 문경면과 가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9년 4월 27일 문경군청을 문경면 상리에서 호서남면 점촌리로 이전하였다.
1956년 7월 8일 호서남면을 점촌읍(店村邑)으로 승격하였다. (1읍 9면)
1963년 1월 1일 농암면 민지리를 가은면으로, 삼송리를 충북 괴산군 청천면으로 편입하였다.
1968년 9월 3일 문경군청을 점촌읍 모전리(현 문경시의회)로 이전하였다.
1973년 7월 1일 문경면 일원이 문경읍으로, 가은면 일원과 상주군 이안면 저음리가 합하여 가은읍으로 각각 승격하였다. 호계면 봉정리를 산양면에 편입하였다. (3읍 7면)
1986년 1월 1일 호계면 별암2리를 점촌읍에 편입하여, 점촌읍을 관할로 점촌시가 설치되었다. (2읍 7면)
1989년 1월 1일 상주군 함창읍 윤직리 일부를 점촌시에 편입하였다.
1994년 12월 28일 충현동을 점촌동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 1월 1일 점촌시 일원과 문경군 일원을 관할로 도농복합형태의 문경시가 설치되었다.
1996년 2월 8일 산북면 거산출장소와 동로면 수평출장소가 각각 폐지되었다.
1999년 1월 1일 신기동과 대성동, 모전동 일부(공평동)를 신평동으로 통합하였다.
2004년 1월 1일 점촌동을 점촌1동으로, 중앙동을 점촌2동으로, 신흥동을 점촌3동으로, 신평동을 점촌4동으로, 모전동을 점촌5동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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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lle: Text: Wikipedia – „문경시“, Autorinnen und Autoren (Versionsgeschichte),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