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역사
수원시는 선사 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던 곳으로, 지동과 이의동에서 중기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고,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원삼국 시대와 유적도 다수 있다. 천관우는 1979년 '마한제국(馬韓諸國)의 위치시론(位置試論)'에서 마한 모수국의 위치를 수원으로 비정하는 견해를 제시했다. 삼국 시대 백제가 차지했다가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매홀군(買忽郡)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이후 신라 경덕왕 때 '수성군'(水城郡)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823년 음력 2월 헌덕왕이 수성군과 당은현(唐恩縣)을 합쳤다.
고려 시대에는 태조의 통일에 수원의 호족들이 협력하면서 수주(水州)로 명칭을 고쳤다. 수주로 승격된 이후 고려 원종 재위 기간인 1271년 대부도에 들어간 몽골군을 죽인 공로로 '도호부'(都護府)로 다시 승격되었다. 그러나 공민왕 시기 홍건적의 난 당시 수원 지역이 양광도에서 가장 먼저 항복해 군으로 강등되었고, 김용에게 뇌물을 주어 부로 승격될 수 있었다.
1413년 태종이 조선의 행정구역을 팔도로 개편한 이후 수원은 도호부가 되었다. 남양도호부, 안산군, 안성군, 진위현, 용인현, 양성현, 양지현이 수원도호부에 속했다. 조선 초 수원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는 김씨, 최씨, 이씨, 서씨가 있다. 이후 조선 세조 때 병조의 건의로 군 체제가 변경되면서 수원에 거진이 설치되었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독산성에서 대치하였고, 병자호란 때는 김준룡이 의병을 일으켜 광교산에서 청나라군을 격퇴했다.
조선 정조 때인 1789년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고 수원도호부에 대한 일련의 교서를 반포하였고, 뒤이어 1796년 수원 화성과 수원 화성행궁이 건립되었다. 동시에 수원 시가지에도 정비가 이루어져 수원향교가 오늘날 자리로 이전했다.
1895년 을미개혁으로 조선 행정체계가 23부제가 되면서 수원도호부가 폐지되고 수원군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인천부로 편입되었지만, 1896년 23부제가 폐지되면서 수원군은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돌아왔다. 이후 1896년 8월 4일 13도로 다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고 수원이 도의 중심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