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matgeschichte · Seongnam-si ·

성남시: 역사

성남시: 역사

1973년 7월 1일 광주군 대왕면·낙생면·돌마면 일원과 중부면 성남출장소 중 단대리·상대원리·탄리·수진리·복정리·창곡리 일대를 관할로 성남시가 설치되었다.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라 1980년대 들어 성남시는 인구 기준 전국 10위 도시로 부상하였다. 따라서 비약적으로 증대하는 행정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성남시 조례 제858호(1988. 6. 3 공포)에 따라 1988년 7월 1일 기존의 돌마출장소, 대왕출장소, 낙생출장소를 폐지하고, 성남시 수정출장소 및 중원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89년 5월 1일에는 성남시 조례 제931호에 따라 수정 출장소, 중원 출장소 2개 출장소를 각각 수정구, 중원구로 승격하였다.
1989년 4월 27일 성남시 남쪽 지역의 소위 '남단녹지'를 중심으로 한 540여만 평 규모의 분당 지역 일대에 10만 6천 호의 주택을 건설하여, 42만 인구를 수용하는 분당신도시 건설 계획이 공식 발표·착수되었다. 이에 따라 성남시 조례 제971호 (1989. 6. 20 공포)에 의거 1989년 6월 1일 분당 지구 개발 지원 사업소를 설치 운영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증해 1991년 9월 17일 중원구에서 분당구가 분구되어 현재의 3구에 이르고 있다.
2009년 11월 2일 중원구 여수동으로 시청사를 이전하였다. 2015년 12월 7일, 위례신도시 건설에 따라 서울특별시 송파구 및 경기도 하남시와 행정 구역 경계를 조정하였다.

성남(城南)이란 이름은 성(남한산성)의 남쪽에 있다는 뜻이다.

8·10 성남민권운동(광주대단지 사건)은 정부와 서울특별시의 일방적 행정에 항거하여 1971년 8월 10일부터 8월 12일까지 경기도 광주군 성남출장소(광주대단지)의 주민 수만 명이 공권력을 해체시키고 도시를 점령하며 무력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정부는 서울시는 철거민을 이주시킬 장소로 광주군 중부면(현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 일대)에 광주대단지를 조성하고, 판자촌 주민들을 이곳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정부의 무계획적인 도시정책과 졸속행정에 반발하여 도시를 점거하고 시위하였다.
사건 발생 초기 3~6만명의 시위대가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었는데 서울시장이 방문약속을 지키지 않자 흥분한 시위대가 성남출장소 등 주요시설을 점거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는 10만명 이상으로 증가하였고 서울 진출까지 시도하였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내무부 장관과 서울특별시장, 경기도지사를 파견하여 이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요구 조건을 수용함으로써 3일 만에 진정되었고 이후 정식으로 성남시가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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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lle: Text: Wikipedia – „성남시“, Autorinnen und Autoren (Versionsgeschichte), CC BY-SA 4.0 · Foto: 안우석,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