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matgeschichte · Eunpyeong-gu ·

은평구: 역사

은평구: 역사

은평구에는 석기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은평구 지역은 일부 지역에서 혈연을 같이하는 씨족끼리 취락을 이루어 집단생활을 하였으며, 움집 같은 곳에 기거하면서 농경과 수렵, 어로활동을 통하여 음식물을 구하고 원시적인 방직술을 습득하여 간단한 천(직물)을 짜 입기도 하였다.
삼국시대인 백제 때에는 위례성, 신라시대에는 신주, 통일신라시대에는 한산주로 부르다가 757년 경덕왕 7년에 ‘한주’로 고쳤다. 그리고 서울 지방에는 ‘한양군’을 설치했는데 서울이라는 이름의 하나인 한양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한양군’을 ‘양주’라 고치고 1087년 문종 21년에 ‘양주’를 ‘남경’으로 승격시켜 ‘서경’(평양), ‘동경’(경주)과 더불어 3소경이 되어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후 1308년 충렬왕 34년에 ‘한양부’로 개칭하였다.
1394년 조선 태조 3년에 한양부로 도읍을 천도하면서 ‘한성부’로 이름을 바꿨으며, 서울 지역은 5부 52방으로 개편했는데, 지금의 구(區)에 해당하는 5부(동, 서, 남, 북, 중) 중 은평구 지역은 북부의 성외인 연은방, 상평방 지역에 해당되었으며 ‘은평’이라는 말은 이 두 지명(연은방+상평방)에서 유래된 것이다.

1466년: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구파발리, 진관내리, 진관외리 설치. 나머지 지역은 한성부 연은방, 상평방.
1949년 8월 13일 :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녹번리, 응암리, 불광리, 신사리, 갈현리, 역촌리, 대조리, 구산리, 증산리, 수색리) 일원이 서대문구에 편입되고, 서대문구 은평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 7월 1일 :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진관내리, 진관외리, 구파발리가 서대문구에 편입되었다.
1979년 10월 1일 : 서대문구 녹번·응암·불광동 등이 은평구로 분리되었다.
15행정동 : 녹번동, 응암1동, 응암2동, 응암3동, 불광1동, 불광2동, 신사동, 갈현동, 역촌동, 대조동, 구산동, 증산동, 수색동, 진관내동, 진관외동
1985년 9월 1일 : 불광2동을 불광2·3동으로, 역촌동을 역촌1·2동으로 분동하였다.
1988년 5월 1일 : 응암2·3동을 응암2·3·4동으로 분동하였다.
1989년 6월 1일 : 갈현동을 갈현1·2동으로 분동하였다.
1989년 9월 1일 : 신사동을 신사1·2동으로 분동하였다.
2001년 11월 20일 :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남청파인힐아파트 일대 지번이 응암동으로 편입됨.
2007년 8월 13일 : 법정동 진관내동, 진관외동, 구파발동을 진관동으로 통합하고, 행정동 진관내동, 진관외동도 진관동으로 합동하였다.
2008년 6월 2일 : 행정동인 응암2·3·4동, 불광1·2·3동, 역촌1·2동이 각각 응암2·3동, 불광1·2동, 역촌동으로 통합되었다. (16행정동, 11법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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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lle: Text: Wikipedia – „은평구“, Autorinnen und Autoren (Versionsgeschichte), CC BY-SA 4.0 · Foto: G43,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