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역사
=== 신석기 시대 ===
강동구 암사동에는 기원전 5000년경에 세워진 신석기 시대의 집터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를 서울 암사동 유적(사적 제 267호)이라 한다.
한편 암사동선사주거지에서는 신석기 유물 뿐 아니라 민무늬토기 등 청동기 시대 유물도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강동구 고덕동과 명일동 일대에서 청동기 시대 당시 유물이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에도 강동구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온조왕 14년(기원전 5년)부터 475년 개로왕까지 백제의 수도였던 하남위례성이 이 남측에 위치해 (지금의 풍납동으로 추정)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1960년대 학자의 의해 강동구 암사동과 천호동에서는 백제 시대의 토성으로 추정되는 곳이 발견되기도 해 이 곳이 백제의 영토였음을 분명히 해 주고 있다.
천호동~암사동 지역은 삼국시대때 백제의 초기도읍지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동북방향의 지역으로서 풍납토성 동북쪽~ 고덕산 사이에 이르는 지역이 바로 지금의 천호동과 암사동의 지역이다.
과거 해발50~60에 낮은 산들이 위치해 백제 초기도읍 북쪽지역의 방어와 한강의 범람으로부터 서민들을 지키는 마을로써 쓰였던것으로 추정된다.
강동구에서는 백제의 초대 임금인 온조왕(?~28)의 이름을 딴 온조대왕 문화체육관을 고덕동에 건설해 온조왕과 백제를 기념하고 있다.
백제의 영토였던 하남위례성은 475년 장수왕의 침략으로 함락당해 고구려의 영토가 된다. 고구려는 강동구를 포함한 백제의 수도였던 곳에 한산군을 설치하고 551년 나제동맹군에 의해 점령되기 전까지 이곳을 77년간 다스리게 된다.
나제동맹으로 백제가 잠시 한강유역을 다시 차지하게 되었으나, 553년 신라가 동맹을 깨고 이 지역을 점령해 신주라고 이름 붙였다. 신주는 이후 북한산주, 한산주 등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남북국 시대인 757년에 이르러 한주라고 칭하고 현재의 경기도, 충청북도 북부, 황해도 일대를 관할하였는데, 강동구를 포함한 고구려 때 한산군 지역은 당시 한주의 중심지였다.
성종 2년인 938년 강동구 일대는 광주목으로 개편, 일대가 마을로 발전하기 시작해 원터골에 명일원이라는 숙박시설을 보급하고 천호동, 명일동 지역에 역참을 설치한다.
강동구 일대는 선조 10년(1577년) 광주부로 승격된다. 당시 강동구의 일대의 명칭은 조선 성종때 구천(龜川) 어효첨(魚孝瞻) 선생(先生)이 사셨던 고장이라하여 선생의 아호(牙號)를 따서 구천면(龜川面)이라 했으며
일제가 한일합방 이후 행정구역(行政區域)을 새로 정할 때 구천면(龜川面)의 이름에서 龜(거북구)자가 복잡하다하여 九(아홉구)자로 바꾸어 구천면(龜川面)이 구천면(九川面)으로 바뀐 것이다.
현종 8년(1667년) 현재의 암사동 일대에 구암서원(龜巖書院)이 건립되는데, 이 서원은 숙종 23년(1697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어 크게 성장하나 고종 8년(1871년)에 실시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허가 되었다. 이후 이 서원이 있었던 자리 인근에 서원마을이라는 자연부락이 들어섰다.
강동구에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신도비(죽은 사람의 일생을 기록한 비석) 가 많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으로 연산군 2년(1496년) 3월에 건립된 광릉부원군 이극배의 익평공신도비, 헌종 12년(1846년) 건립된 옥천부원군 유창의 유창신도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96호) 등이 있다.
조선시대 때 광주군 구천면 지역엔 굽은다리, 벽동말, 차재말, 당말, 은호말 등이 존재했다.
너른나루가 일찍이 고려, 조선시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서 일제시대에도 동쪽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의 요충지가 되었다. (송파와 더불어 양 마을이 홍수로 지위가 자주 바뀌고 - 좌로수참의 물목이 집중되던 곳이었다.)
구천면에서 가장 큰 지역으로 암사동과 천호동이 발전되기 시작해 1936년에 광진교가 지어졌다. 이로써 그 당시 제2한강교나 다름없던 다리가 놓여졌다.이와 동시에 일제는 조선시대 때 이미 만들어진 천호동과 암사동 지역에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로 가던 역(驛)과 장터길들을 우회, 재건하여 2차선 도로를 만든다. 이 길이 바로 지금의 구천면로이다.
1979년 10월 1일 강남구의 탄천 동쪽을 관할로 강동구를 분리 설치하였다. (18행정동)
18행정동 - 하일동, 명일동, 암사1동, 암사2동, 천호1동, 천호2동, 성내동, 풍납동, 길동, 거여동, 마천동, 방이동, 송파동, 잠실1동, 잠실2동, 잠실3동, 잠실4동, 잠실5동
1980년 7월 1일 행정동 암사3동을 암사1동에서, 천호3동을 천호1동에서, 잠실6동을 잠실4동에서, 둔촌동을 길동에서 분리하여 신설하였으며, 성내동을 성내1동과 성내2동으로, 마천동을 마천1동과 마천2동으로 분리하였다. (24행정동)
1983년 1월 1일 행정동 가락동, 문정동을 송파동에서 분리하여 신설하였다. (26행정동)
1983년 12월 1일 행정동 잠실본동을 잠실1동에 분리하여 신설하였으며, 길동을 길1동과 길2동으로 분리하였다. (28행정동)
1985년 9월 1일 행정동 상일동을 하일동에서, 고덕동을 명일동에서, 천호4동을 천호2동에서, 오금동을 방이동에서, 석촌동을 송파동에서 분리하여 신설하였으며, 풍납동을 풍납1동과 풍납2동으로, 둔촌동을 둔촌1동과 둔촌2동으로 분리하였다. 그와 동시에 법정동 이동을 폐지하고 방이동에 편입하였다. (35행정동)
1988년 1월 1일 가락동 · 거여동 · 마천동 · 문정동 · 방이동 · 삼전동 · 석촌동 · 송파동 · 오금동 · 잠실동 · 장지동 · 풍납동을 관할(18행정동)로 송파구가 설치되었다. (17행정동)
17행정동 - 하일동, 상일동, 명일동, 고덕동, 암사1동, 암사2동, 암사3동, 천호1동, 천호2동, 천호3동, 천호4동, 성내1동, 성내2동, 길1동, 길2동, 둔촌1동, 둔촌2동
1988년 7월 1일 행정동 성내3동을 성내2동에서 분리하여 신설하였으며, 명일동을 명일1동과 명일2동으로, 고덕동을 고덕1동과 고덕2동으로 분리하였다. (20행정동)
1991년 8월 6일 행정동 암사4동을 암사1동과 암사3동에서 분리하여 신설하였다. (21행정동)
2000년 1월 1일 행정동 하일동을 강일동으로 개칭하였다.
2007년 1월 1일 법정동 하일동을 강일동으로 개칭하였다.
2007년 8월 1일 행정동 강일동의 업무를 고덕2동에서 통합운영하였다. (20행정동)
2008년 7월 7일 행정동 암사4동을 암사1동으로, 천호4동을 천호2동으로, 길1동과 길2동을 길동으로 합동하였다. (18행정동)
2021년 7월 1일 강일동을 강일동, 상일2동으로 분동하고, 상일동을 상일1동으로 개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