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matgeschichte · Gumi-si ·

구미시: 역사

구미시: 역사

이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며, 고인돌이나 삼국 시대를 전후로 형성된 고분군이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해동불교의 성지 도리사를 비롯한 불교 문화와, 길재를 연원으로 하는 이른바 영남학파의 한 축을 담당한 선산 사림의 유교 문화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초에 편찬된 《일선지》(一善誌) 인물조에 실린 인물은 327명으로, 같은 시기에 편찬된 《영가지》(永嘉誌)의 안동의 인물이 163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남지방의 다른 읍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를 보여준다. 특히 고려 말 이래로 길재, 김숙자, 김종직, 하위지 등 사림의 주요 인물이 다수 등장하였다. 이중환은 그의 책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이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고까지 할 정도였다.
특히 조선 초에는 1만 명이 채 못 된 인구가 임진왜란 이후 급격히 증가해 18세기에는 8만 명까지 증가하는 등 영남 지방의 주요 도시의 하나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특징의 배경으로는 낙동강과 그 지류가 흘러 형성한 넓은 경지와 자연조건으로 인해 다른 지역과 비교해 많은 사족(士族)들이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유입되었고, 이러한 세력들이 토착 세력과 함께 결합하면서 지방에서의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농경에 적합한 수리적(水理的) 조건으로 농업 생산성이 다른 지방에 비해 높은 것도 이러한 원인의 하나이다.
현재의 동 지역은 구미 등으로 불리다가, 경부선 구미역의 개설 후 주요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1963년에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한 이후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것과 함께 1977년에는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관할하는 경상북도구미지구출장소가 설치되어 지금의 동 지역을 형성하였다. 1978년에는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합쳐 구미시를 설치하면서 양 지역과 구분된 독자적인 권역을 형성하였다. 1995년에는 구미시와 선산군을 다시 합쳐 도농복합형 구미시를 설치하고, 구미시선산출장소를 설치함으로써 지금의 구미시가 형성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형 구미시 출범 당시에는 수출액이 92억 달러였으나, 1997년에 120억 달러였던 수출액은 IMF 구제금융사건 이후 110억 달러로 감소했다. 그러나 1999년에 다시 130억 달러 수준을 회복한 뒤 해마다 수출액을 크게 늘려갔으며 2003년에는 200억 달러 수출을, 2005년에는 3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였다. 현재는 구미국가산업단지 내에 1800여 개의 기업에서 근로자 10만여 명이 종사해 시 인구의 주요 축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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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lle: Text: Wikipedia – „구미시“, Autorinnen und Autoren (Versionsgeschichte), CC BY-SA 4.0 · Foto: G43, CC BY 3.0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