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 역사
1936년 4월 1일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과 북면 일부(신길리, 번대방리 일부(현 대방동), 도림리 일부(현 도림동), 노량진리, 상도리, 본동리, 흑석리, 동작리), 고양군 용강면이 경성부에 편입되어, 옛 시흥군 영등포읍과 북면 일부와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현 여의도동)에 영등포출장소를 설치했다.
1943년 6월 10일 출장소를 대체하여, 경기도 경성부 영등포구역소가 설치되었다. 양화정에 영등포구역소가 있었다. (관할구역: 당산정·영등포정·여의도정·도림정·신길정·양화정·양평정·본동정·노량진정·상도정·흑석정·동작정)
1946년 서울시 영등포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때의 관할 구역은 당산동, 사옥동(현재의 문래동), 신길동, 양평동, 양화동, 영등포동, 도림동, 여의도동, 노량진동, 상도동, 본동, 흑석동, 동작동으로서 현재의 영등포구의 관할 구역과 대체로 일치한다. 구역소는 구청으로, 구장은 구청장으로, "정"은 "동"으로 개칭하였다.
1949년 8월 13일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구로리(현 구로구 구로동), 도림리(현 구로구 신도림동, 영등포구 대림동), 번대방리(현 동작구 신대방동)가 편입되었다. 이때 편입된 도림리는 "신도림리"라 하였다.
1962년 12월 12일 시흥군 동면 일부·신동면, 부천군 소사읍 일부·오정면 일부, 김포군 양서면·양동면을 영등포구에 편입하였다.
1963년 1월 1일 편입지역을 관할하는 5개 출장소(관악·신동·오류·양서·양동)를 설치하였다.
1967년 오류출장소·양동출장소·관악출장소를 폐지하고 구직할로 둠.
1973년 7월 1일 노량진동·상도동·상도1동·봉천동·본동·흑석동·동작동·사당동·대방동·신대방동·방배동·신림동이 관악구로 편입되었다.
1973년 신동출장소 관할 양재, 남성, 서초, 잠원동이 신설된 서울시 성동구 직할 영동출장소 이속,
서울 도심 재개발이 한창이었던 1970년대 많은 이주민들이 현재의 양천구 지역에서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하며 거주하게 되었다.
1975년 가리봉동을 독산동과 가리봉동으로 분동하였다.
1977년 9월 1일 강서구 설치
1977년 가리봉동이 가리봉1·2동으로 나누어짐
1980년 4월 1일 아래 도표와 같이 일부 행정구역이 구로구로 분리되었다. (21행정동) 이와 동시에 법정동 신도림동 중 영등포구 잔류지역(도림천 이북)은 대림동으로 개칭되었다.
1980년 7월 1일 대림1·2동 각 일부를 대림3동으로 분동하였다. (22행정동)
2008년 9월 1일 영등포1동·신길2동이 영등포본동으로, 영등포2·3동이 영등포동으로, 도림1·2동이 도림동으로, 문래1·2동이 문래동으로 합동되었다. (18행정동)
지금의 영등포구(대림동 제외) 일대와 동작구 지역(신대방동, 사당동 제외)은 한강 이남 지역 중에서 가장 먼저 서울(경성부)에 편입된 지역으로, 경인선 권역(현재의 금천구, 구로구, 관악구, 강서구, 양천구, 광명시, 부천시, 계양구, 부평구, 서구 일대)의 경성부 추가 편입을 염두에 두어 영등포의 경성부 편입이 이루어졌다.
1936년 경성부 편입 이전에도 영등포 지역에서의 경성부 편입 추진이 있었으나 한강대홍수 사태 등으로 무산된 적이 있다. 1930년대 초반에 영등포 지역은 자족적인 신생공업도시로서의 기반을 다지고 있던 시기였고, 일본인 유지들이 경성부 편입에 반대했으나 조선총독부의 대경성계획 정책에 따라 경성부 편입이 단행되었다. 이전까지 여의도는 강북 지역과 한 행정구역이었으나, 이때 영등포 지역으로 편입했다. 당시 여의도 지역은 여의도공항을 제외하면 개발이 되지 않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