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 역사
조선 숙종 24년(1698년)에는 제기리에 호랑이가 마을에 들어온 일이 기록되었다.
조선 정조 12년(1788년)에는 동대문 바깥의 역일계, 역이계, 사계, 마장리계, 답십리계, 전농리계, 청량리계, 제기리계, 중랑포계, 장위리계를 인창방에 소속시켰다.
조선 후기에 작성된 《대동여지도》의 「경조오부도」에 현재의 동 명칭과 유사한 제기현, 전농리, 답십리, 청량사 등의 명칭이 수록되었다.
1943년 6월 10일 최초의 구제 실시로 돈암정, 창신정, 숭인정, 신설정, 용두정, 안암정, 제기정, 청량리정, 회기정, 이문정, 휘경정, 전농정, 종암정, 답십리정, 성북정을 관할로 하여 경기도 경성부 동대문구가 설치되었다.
1946년 10월 9일 동대문구에 속한 행정구역의 일본식 명칭이 아래와 같이 개칭되었다.(→서울의 역사)
1949년 8월 13일 아래 도표와 같이 일부 행정구역이 이 날 새로 설치된 성북구로 편입되었다.
1955년 신설동 중 일부를 관할로 하여 보문동이 분리되었다.
1962년 12월 12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상봉리 등과 성동구 면목동이 동대문구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일 구리면에서 편입한 5개동 지역에 망우출장소를 설치했다.
1968년 1월 1일 망우출장소가 폐지되면서 동대문구 직할로 바뀌었다.
1975년 10월 1일 동대문구 창신동 및 숭인동 등이 종로구로 편입되었고(이 과정에서 흥인지문도 종로구로 들어갔다.), 보문동이 성북구로 편입되었다. 또한 성동구와 경계 조정이 있었다.
1988년 1월 1일 면목동 등을 관할로 중랑구가 설치되었다. (26행정동)
2008년 8월 11일 행정동 용두1동과 용두2동을 용두동으로, 청량리1동과 청량리2동을 청량리동으로, 전농4동을 전농2동으로, 답십리5동이 답십리3동으로 합동하였다. (22행정동)
2009년 5월 4일 용두동과 신설동을 용신동으로, 제기1동과 제기2동을 제기동으로, 전농2동을 전농1동으로, 답십리3동을 답십리1동으로, 답십리4동을 답십리2동으로, 장안3동을 장안1동으로, 장안4동을 장안2동으로, 이문2동을 이문1동으로 합동하였고, 전농3동을 전농2동으로, 이문3동을 이문2동으로 개칭하였다. (14행정동)
2025년 7월 1일 용신동을 용두동, 신설동으로 분동하였다. (15행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