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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시: 역사

해주시: 역사

고구려 때는 내미홀군(內未忽郡)·지성(池城)·장지(長池)라 부르고, 신라 문무왕(文武王) 이후 한주(漢州)에 속하였다가 경덕왕(景德王) 21년(762) 폭지(瀑池)라 개칭하고 지성을 쌓아 대륙방면에 대한 전위부(前衛部)로 중요시되어 왔다.
고려 태조는 바다에 임한 까닭에 해주(海州)라 명하고 983년(고려 성종 2년) 처음으로 십이목(十二牧)을 두었는데 이 때, 해주에 해주목(海州牧)을 두었다. 이어서 절도사(節度使)를 두고 현종 때에는 절도사를 폐하고 4도호부(都護府)의 하나인 안서도호부를 두었다. 예종 때는 대도호부로 올리고 고종 때 목으로 환원하여 조선에 계승었다.
광해군 때 일시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인조 원년 복구되고, 고종 32년(1895년) 23부(府) 실시로 해주부가 되어 16군을 관하에 두었다가 1896년 13도(道制) 실시로 황해도의 도청소재지로 되었다.

1920년 지정면(指定面)으로 승격하였다.
1931년 4월 1일 해주면을 해주읍(邑)으로 승격하였다.
1938년 10월 1일 해주읍을 해주부(府)로 승격하였다. 종래의 해주군은 벽성군(碧城郡)으로 개칭하여 분리하였다.
1940년 개항장으로 지정되었다.
1943년 10월 1일 벽성군 서석면 일부를 편입하였다.

1945년 9월 2일 :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할 때 대부분이 38선 이북에 속했다. 38선 이남의 용당포 지역은 미군정과 소련군정의 합의 끝에 38선 이북으로 간주하기로 합의하였다.
광복 후 해주시(市)로 개칭하였다.
1954년 황해도가 2개 도로 나뉘면서 황해남도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61년 청단군 영양리와 벽성군 신광리를 편입하였다.
1965년 청단군 작천리·장방리를 편입하였다.
1973년 국제 무역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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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lle: Text: Wikipedia – „해주시“, Autorinnen und Autoren (Versionsgeschichte), CC BY-SA 4.0 · Foto: David Stanley from Nanaimo, Canada, CC BY 2.0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