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matgeschichte · Gyeongju-si ·

경주시: 역사

경주시: 역사

삼한 시대에 '사로국'이라는 이름으로 비(非)한국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한국의 기록(아마도 신라의 왕조 실록을 기반으로 한 자료)에 따르면, 사로국은 기원전 57년 경주 지역의 여섯 개 마을이 박혁거세를 중심으로 통합되며 세워졌다고 한다. 이후 왕국이 성장하면서 국호를 신라로 변경했다. 신라 시기, 이 도시는 서라벌이라 불렸으며, 이 지명은 훗날 '서울'처럼 '수도'를 의미하는 일반 명사로 발전하게 된다. 또 계림(鷄林, 닭의 숲)'이나 금성(金城, 금의 성 또는 철의 성, 즉 난공불락의 요새)'이라는 이름도 사용되었다. 계림에 대해서는 닭·달·ᄃᆞᆯ + 벌로 재구하여 월성(月城), 양부(梁部)와 같은 단어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닭(鷄)을 훈음차 새(鳥)로 해석하고 수풀(林)과 합쳐 새불 즉 서벌, 서라벌과 같은 의미로 보는 견해가 있다.
668년 신라가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를 통일한 후, 경주는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신라 왕실과 대부분의 귀족들이 이곳에 거주했으며, 그 번영은 전설처럼 전해졌고, 9세기 아랍의 지리서 『도로와 왕국의 책』에는 페르시아까지 그 명성이 알려졌다고 한다.『삼국유사』는 경주의 전성기 가구 수를 178,936호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당시 인구는 거의 백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경주의 대표 유적 대부분은 이 통일신라 시대(10세기 초 고려의 건국으로 종결)에 조성된 것이다.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항복한 이후, 경주는 수도의 지위를 잃었다. 940년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도시 이름을 경주(慶州)로 바꾸었는데, 이는 "경사로운 고을"이라는 뜻이다.
987년, 고려는 수도 개경 외에 3개의 보조 수도를 세우는 제도를 도입했는데, 경주는 "동경"(東京, 동쪽 수도)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1012년 현종 3년에 이 칭호는 폐지되었다. 이후 경주는 영남도 관찰사가 머무는 행정 중심지로 지정되었다. 당시 경주는 영남 중동부 대부분을 관할했으나, 13세기에 들어 행정 구역은 크게 축소되었다. 조선시대(1392–1910)에 접어들며 국가 차원의 중심지는 아니었지만, 지역적인 영향력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1601년에는 도청 소재지로서의 지위도 상실하게 된다.
13세기에는 몽골군이 황룡사에 있던 9층 목탑을 파괴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경주 지역이 격전지로 변하며, 일본군은 불국사의 목조건물들을 불태웠다. 침입 외에도 조선 초기에는 유교 성리학자들이 남산의 불교 조각상을 훼손하며 팔이나 머리를 파괴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경주는 규모가 작은 도시로 남았고, 주요 도시의 지위를 잃었다. 이 시기에는 특히 고분 내부에 대한 고고학 발굴이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수많은 무덤들이 오랜 세월 동안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1915년에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신인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 후반, 경주는 철도 교차 지점으로 성장했으며, 동해남부선과 중앙선이 건설되며 경주는 중일전쟁 대비와 동해 자원 개발을 위한 교통 요지로 활용되었다.
광복 이후인 1945년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큰 혼란에 빠졌고, 경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해외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현재 동천동 일대에 귀환민 마을이 조성되었다. 특히 이 시기 경주는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한 게릴라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으로 알려졌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경주는 비교적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쟁 기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경주는 남한의 통제 아래 있었으며, 1950년 말 잠시 포항에서 밀려 내려온 북한군이 접근하면서 일부 지역이 전선에 포함되기도 했다.
1955년 9월 1일 경주군 경주읍과 내동면 등이 경주시로 승격되고, 경주군은 월성군(月城郡)으로 개칭되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경주는 인근 지역 산업화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1973년 인근 도시 포항에 포스코 제철소가 가동을 시작했고, 같은 해 울산에는 대규모 석유화학 단지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산업 기반은 경주의 제조업 발전에도 큰 힘이 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 월성군을 경주군으로 개칭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 경주시와 경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형태의 경주시가 설치되었다. 2021년 4월 1일 양북면을 문무대왕면으로 개칭하였다.
2016년 9월 12일 경주시 남서쪽 9km 지점에서 각각 규모 5.1, 5.8의 한반도 최대의 강진이 일어났다.
2024년 APEC 정상회의 개최지로 최종 선정되었으며, 2025년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이곳에서 APEC 경주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본 회의에서는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대응, 포용적 성장 등 주요 의제가 논의되었고, 회원국 간 협력 강화를 위한 경주 선언이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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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lle: Text: Wikipedia – „경주시“, Autorinnen und Autoren (Versionsgeschichte), CC BY-SA 4.0 · Foto: Kok Leng Yeo from Singapore, Singapore, CC BY 2.0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