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역사
삼한시대는 변한의 12개국 중 독로국이라고 불리었으며, 신라 법흥왕 7년에 소가야국으로 개칭하였다. 532년 법흥왕 19년에는 금관가야의 일부가 되었고, 677년 문무왕 17년에 '상군'(裳郡)이라고 칭했다가 757년 경덕왕 16년에 이르러 거제군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983년 고려 성종 2년에는 기성현으로 칭해졌다. 고려 의종은 정중부의 난으로 인해 현 둔덕면 거림리 산 95번지 일대의 둔덕기성(폐왕성)에 유폐되었으며, 이 유적지는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8월 24일에는 사적 509호로 지정되었다. 1271년(고려 원종 12년) 왜구의 침탈로 거제현민들이 북쪽의 진주와 거창 등지로 옮기고, 거제현의 치소(治所)도 거창현 동부의 가조(加祚)로 피난하였다.
1414년(조선 태종 14년)에는 거창현과 거제현을 합하여 '제창현'(濟昌縣)으로 하였다가 1년 후에 다시 쪼개었고, 1422년(조선 세종 4년)에 현이 거제도로 돌아와 거제읍성(현 고현성) 등을 축성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고현성이 함락되었고, 한산해전과 칠천량 해전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1663년(조선 현종 4년)에 현청을 현재의 거제면으로 이전하였고, 1895년 고종 때 거제군이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거제는 유배지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우암 송시열을 비롯해, 이행, 이유원 등이 유배되었고 이행(李荇)은 29세 때 거제도 고절령(고자산치) 아래에 위리안치 되어 관노의 신분으로 120여수의 시를 지어 거제유배 역사상 가장 많은 시를 남겼다.
1914년 4월 1일 거제군과 용남군이 통영군으로 통합되었다. 1919년 4월 3일에는 3.1 운동의 일환으로 아주리 당등산 일대에서 아주리시장 만세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1950년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1950년 11월 27일 유엔군에 의해 현재의 거제시 고현동, 수양동, 장평동, 연초면, 남부면 일대에 포로수용소가 지어졌다. 이들 전쟁 포로는 1953년 5월 3일 이후 송환되거나 같은 해 6월 18일 이승만의 반공 포로 석방으로 탈출하였다. 수용소는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폐쇄되었다. 한편 흥남 철수로 인해 많은 피난민이 들어왔다.
1953년 1월 1일 : 거제도와 부속도서가 통영군으로부터 분리되어 다시 거제군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 일운면 고현(古縣)출장소와 장승포읍 수월리, 양정리를 신현면(新縣面)으로 분리하였다.
1971년 4월 8일 : 거제대교가 개통되어 거제도가 육지와 연결되었다.
1973년 10월 11일 :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현 대우조선해양)가 출범하였다.
1974년 8월 5일 : 삼성조선소(현 삼성중공업)가 창립되었다.
1979년 5월 1일 : 신현면이 신현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2월 15일 : 동부면 저구출장소가 남부면으로 승격하였다.
1989년 1월 1일 : 장승포읍이 장승포시로 승격하여 거제군으로부터 분리되었다.
1995년 1월 1일 : 거제군과 장승포시가 도농복합시인 거제시로 통합하였다.
1997년 8월 2일 :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해안으로 무장간첩이 침투한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 사건이 발생하였다.
1999년 4월 22일 : 기존의 거제대교를 대체하는 신거제대교가 개통되었다.
2000년 1월 1일 : 거제시 하청면 실전리와 칠천도의 어온리를 연결하는 칠천교가 개통되었다.
2008년 7월 1일 : 신현읍을 폐지하고, 4개 행정동(장평동, 고현동, 상문동, 수양동)을 설치하였다. 동 전환 당시(2008년 6월 말) 신현읍의 인구는 93,279명으로, 장승포 지역의 6개 행정동(69,626명)보다 인구가 많았다.
2009년 7월 13일 : 거제시 사등면 성포리에서 가조도 간의 연륙교인 가조 연륙교가 개통되어 거제시의 큰 섬들을 연결하는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2010년 12월 14일 : 거제시 장목면과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개통되었다. 거가대교의 개통으로 인해 거제시와 부산의 통행거리는 기존 140km에서 60km로, 통행시간은 기존 130분에서 50분으로 단축되었다.
2016년 5월 1일 : 장승포동과 마전동이 장승포동으로 합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