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야군: 역사
이 군은 남옥저(南沃沮)에 속해 있다가 서기 56년 태조왕의 정벌로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6세기 중엽에는 잠시 신라 진흥왕이 점령하였다. 발해가 현재의 북청에 남경 남해부(南京南海府)를 설치하면서부터 발해 영토로 편입되었다가 고려가 세워진 후 고려 영토에 편입되었다.
고려 초에는 화주(和州)라 불렸으며, 천리장성이 세워진 북방 접경이었다. 1258년에 몽골에 점령당해 이 지역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설치되었다가 공민왕 집권기인 1356년 수복하고 화령부(和寧府)라 하였다. 이곳은 이성계의 출생지로, 조선 태조 이성계는 화령(和寧)을 국호로까지 검토했었다. 조선 시대 이후로는 영흥군(永興郡)이라 불렸다.
1952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흥군의 일부가 인흥군 및 요덕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74년에 인흥군이 다시 흡수되었고, 1977년에 영흥군에서 금야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